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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시대 (1789-1814년)
•자유, 평등, 박애라는 정신을 지닌 프랑스혁명은 의복의 형식 및 의복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모든 복식은 간편함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공포정치시기에는 허식이나 특권, 부를 상징하는 것은 곧 단두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근본정신과 함께 의상의 스타일은 파리를 중심으로 서부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복식은 남녀모두 간편함을 주구하는 쪽으로 변화되었으며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제국시대(Empire Period)로 일컬어졌다.
•18세기 초에 이루어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발견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프랑스 여성들은 이 고대도시들의 의상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을 착용하였다. 그 결과 전 시대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의상이 유행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지 않았으며, 얇은 머슬린 가운(muslin gown)에 가슴 밑을 강조하는 하이웨이스트형의 'ROBE EN CHEMISE'-속옷형의 드레스-를 착용했는데 이것은 끈으로 엮는 그리스 로마식-고전식- 샌들과 함께 착용했다. 이것은 19세기 초의 엠파이어 가운의 특징이 되었다. 여성들은 이 얇은 머슬린 가운의 윈피스를 겨울에도 입고 다녔으며 심지어 옷에 물을 뿌려 속살이 살짝 드러나 보이게 하며 하늘거리는 느낌을 더 하고자 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성들의 유행에 대한 집착은 집요해서 이 시대의 여성들은 실제로 이러한 유행의상으로 인해 폐렴에 걸리는 일이 더 많았다.
•목선을 깊게 판 1801년 경의 엠파이어드레스
•다리가 살짝 비치며 고적식 샌달과 머리의 리본장식 및 가슴의 리본장식을 한 엠파이어 드레스
•이 시기에 있어서 남성복식은 여성에 비해 전시대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앞판의 폭을 비스듬히 재단한 프록(Frock)코트, 테일코트(Tale Coat)는 1770년대에 처음소개되었으며 이시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코트는 라펠이 달려 있고 길이는 무릎정도의 길이이며 칼라는 세움 분량이 많아 턱에 닿을 정도였다. 허벅지에 꼭 맞는 형의 바지인 'Breeches a l'anglaise'는 무릎 밑의 길이가 일반적이며(아래 그림 남성) 신발과 부츠는 앞이 뾰족한 형이다. 목에 스카프처럼 휘감는'cravate'를 착용하고 코트 안에 입는 '웨이스트코트-waist coat'는 라펠이 달린 숄칼라형의 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더블버튼형으로서 앞이 네모형으로 재단되어 현재 남성 의상에 근접한 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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